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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연출 A의 이야기

이게 사회생활이라면 나는 이 사회가 싫다 | 조연출 A의 이야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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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세상을 아는 게 너 같은 거라면 모르고 살래."

악동뮤지션 YOU KNOW ME의 가사처럼 "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면 난 이 사회가 싫다"고 생각하기까지는 입사 후 채 1년, 아니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. 누군가는 그냥 알게되는 것들을 나는 꼭 경험해봐야 알았다. 멍청해서 당해봐야 알았다.

나는 드라마PD다. 이 한 문장을 위해 달려온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내 일이 자랑스럽지 않다. 빛날 것 같던 '드라마PD'라는 타이틀은 헐대로 헐어있다. 이 사회의 모든 뗏국물이 묻어있는 느낌이다. 악취가 난다. 나는 냄새라도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한다. 탈취제를 뿌려본다. 것도 안되면 정신승리의 세계로 넘어가본다. 이정도 냄새는 다들 맡고 살아. 익숙해지고 살아. 원래 나는 냄새야. 나한테서만 안 나면 돼. 그런데 내 주변 온곳에 퍼져있는 냄새가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있을까?

PD가 되고 나서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그냥 나를 분리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. 이건 내가 아니라고, 나는 이렇지 않다고. 그 과정이 특히나 어려운 이유는 내가 정말 드라마를, 드라마의 '사람 냄새'를 사랑했기 때문이다. 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건 사람이 아니었고, 사람이 되어서는 안됐다. 그렇게 토나오는 분리의 과정이 진행될 수록 회사에서의 나는 기능하는 부품처럼 느껴졌다. 그게 내 삶을 위해 건강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, 살기 위해 그렇게 했다. 마치 역할극을 수행하는 것 같기도 했다. 이 역할이 더 이상 감당하기 버거워질 때, 사람들은 이 판을 떠난다. 때론 극단적인 방법으로.

여긴 이래저래 죽음이 우스운 동네였다. 우습다기보단 자연스러운. 또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만연한. 누군가의 단어를 빌리자면 '운 나쁘면 걸리는' 일이었다. 촬영 중 불이 나서, 감전돼서, 물에 빠져서. 사고씬을 찍다가 진짜 사고가 나서. 죽음에 대한 많은 일화가 돈다. '드라마만, 그림만 생각하다보면 그런 실수를 하는 거야 사람이'. 이야기의 끝은 어울리지 않게 가볍다.

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조연출의 자살은 또 하나의 죽음, 한 사람의 나약함일 뿐이다. '연출이 진짜 힘들게 했지', '선배를 잘못 걸렸어' 한 마디로 정리되는 일. '그런데 걔가 멍청했지', '누군 안 힘들었다고'가 덧붙는 일. '그러니까 너도 빨리 도망가' 농담조로 끝나는 일. 그 농담이 뼈에 사무치니 진짜 도망가야 하는데, 하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나는 이 곳에서 뭘 보고 있는 걸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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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편집자 주>

이 글은 혼술남녀 고 이한빛 피디를 추모하며 또다른 조연출A가 쓴 글입니다. tvN 드라마 ‘혼술남녀’의 조연출 고 이한빛 (Han Bit Syd Lee) 씨는 지난해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습니다. 이 사회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폭력적인 조직문화를 ‘관행’으로 ‘상식적’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. 그 ‘상식'에 반기를 들고 싶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. 우리 사회 곳곳, 비상식적인 노동과 조직문화에 대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. 해시태그 #이게_사회생활이라면 을 달고 전체공개로 글을 써주시면 닷페이스에서 릴레이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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